[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금기의 영역에 있던 퀴어(성소수자) 문화가 방송가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BL드라마(Boy’s Love·남성 동성애 코드의 로맨스물)가 불을 지폈고, 최근에는 실제 일반인 퀴어 커플들이 출연하는 예능까지 생겼다.
BL 드라마들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상위권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고, 스타 등용문이 됐다. 수많은 BL드라마 제작과 인지도 있는 스타들의 캐스팅 소식이 들려오며 당분간 열풍이 지속될 것을 예고했다. 예능에서는 실제 일반인 커플들이 출연해 여느 리얼리티 커플들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조롱, 그리고 '눈물팔이' 사연으로 점철됐던 과거와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다. 자극적 편집에 목매다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이들의 삶을 조명하고 자연스럽게 공감을 이끌어낸다. 시청자들의 인식 변화와 함께 퀴어 콘텐츠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시멘틱 에러' [사진=왓챠]](https://image.inews24.com/v1/d24004362a9dc6.jpg)
◆ "심리적 장벽 낮췄다"…퀴어 열풍 지핀 BL드라마
'숨어서 보던' 시대는 지났다. 소수의 마니아층에 국한됐던 BL드라마가 장르의 한계를 깨고 무한 확장 중이다. 퀴어 콘텐츠 열풍의 구심점 역할도 하고 있다.
최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BL드라마 '시멘틱 에러'의 극장판 '시멘틱 에러:더 무비'는 예매 오픈 1분 만에 매진을 기록, 영화제 최고 화제작이 됐다.
'시멘틱 에러'는 BL콘텐츠 열풍에 불을 지핀 작품으로, 웹소설로 시작해 웹툰, OTT 드라마, 극장판까지 제작된 흥행작이다. 주인공들의 탄탄한 서사와 케미, 무엇보다 BL장르를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일반 시청자들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을 만한 캠퍼스 로맨스 소재로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췄다. 탄탄한 팬덤을 기반으로 제작된 드라마 '시멘틱 에러'는 공개와 함께 8주 연속 왓챠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했고, 공개된 지 수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왓챠 시청 순위 TOP10 상위권에 머물며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열광적인 팬들의 응원에 힘입어 극장판 '시멘틱 에러:더 무비'는 오는 8월 CGV 개봉을 확정하는 등 그야말로 'BL계의 슈퍼 IP'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왓챠는 '시맨틱 에러'에 이어 청춘 로맨스 사극 '춘정지란'도 방영했다. '춘정지란'은 노비 신분을 벗으려는 주인공이 여장남자로 위장 혼인을 하게 되는 이야기로 그룹 B.A.P 출신 유영재와 신인 배우 김송, 유태하가 출연했다.
티빙은 한류스타와 훈남 셰프의 달달한 동거를 다룬 동거 로맨스 '나의 별에게' 시즌2를 방영했다. 시즌1을 통해 열렬한 반응을 얻어낸 '나의 별에게' 시리즈는 티빙 드라마 인기 순위 상위권에 꾸준히 랭크되고, 일본 라쿠텐TV 월간 한국드라마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글로벌 성과도 거뒀다.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시멘틱 에러' [사진=왓챠]](https://image.inews24.com/v1/1210a7609aa8d7.jpg)
이처럼 BL드라마들이 탄탄한 마니아층의 지지 속 흥행을 거두자 콘텐츠 제작에도 속도가 붙었다.
BL드라마의 성지로 불리는 왓챠는 또 하나의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동명의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오피스 로맨스 '신입사원'으로 또 한 번 시청자 유혹에 나선다. 코어 팬층의 높은 충성도를 보유한 흥행만화 '비의도적 연애담'도 드라마로 제작된다. OTT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키다리스튜디오는 하반기 인기 원작을 드라마화 한 '오 나의 어시님' '해피메리엔딩' 공개를 앞두고 있다.
◆ 퀴어 커플 로맨스까지, '봉인해제' 된 예능…사회적 화두 던진다
돌싱들의 연애와 이혼 커플들의 이야기까지, 연애 리얼리티의 유행 속 성소수자 커플들의 이야기까지, 그 범위가 확장됐다. 웨이브는 '메리퀴어'와 '남남연애' 등 두 편의 오리지널 예능프로그램을 잇달아 선보인다. 국내에서 다양성 커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최초다.
BL드라마가 일부 여성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실현시킨 허구라면, 퀴어 커플은 현실 세계와 맞닿은 진짜 리얼한 이야기다. 금기시 됐던 이들의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파격 그 자체다.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시멘틱 에러' [사진=왓챠]](https://image.inews24.com/v1/244a5137142e53.jpg)
지난 8일 첫공개 된 '메리 퀴어'는 당당한 연애와 결혼을 향한 다양성(性) 커플들의 도전기를 그린 국내 최초 리얼 커밍아웃 로맨스. 기존 이성커플들의 연애 리얼리티에서 한단계 진화한, 퀴어 커플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간 사회의 그늘에 숨어있던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양성애자 등 성소수자들이 예능의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등장한다. 남남커플과 여여커플, 트렌스젠더 커플 등 세 커플의 일상 연애는 여느 일반인 커플과 다르지 않다. 다만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을 도와줄 웨딩플래너를 찾는다든지, 공개 열애 후 직장 상사에서 쌍욕을 들어야 했던 이들의 사연은 우리 사회의 편견에 화두를 던지는 지점이다.
오는 15일 첫공개 되는 '남남연애'는 설정 자체만 놓고 보면 더 파격적이다. 솔직하고 과감한 남자들이 '남의 집'에 입주해 서로의 진솔한 마음을 확인하는 국내 최초 남자들의 연애 리얼리티를 표방한다. 예고편에는 "같은 방에 있다 보니까 첫날부터 마음을 들키기 싫다"는 남성들의 속마음 고백과 함께 "너 혹시 나 좋아하는 거 아냐?"라는 돌직구 멘트는 방송 전부터 아슬아슬하면서도 본방송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웨이브 임창혁 매니저는 최근 BL드라마 열풍을 언급하며 "미화하거나 극적 요소를 가미한 드라마가 아닌, 리얼한 일상 콘텐츠는 왜 세상에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라며 "성소수자들의 환경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고민과 공론화가 필요하다면, 꾸며내는 것이 아닌 그들의 생생한 삶 자체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퀴어 예능의 출발점을 알렸다.
그러면서 "퀴어 이슈에 대해 호불호를 갖고 계신 분들은 그래도 나름대로의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관심조차 없는 분들이 아직까지는 대다수일 거라 생각한다"라며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드리는 프로그램이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 '파격' 퀴어 소재, OTT 타고 새바람…인지도 스타들도 가세
그간 퀴어는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혹은 일부 마니아층이 향유하는 비주류 문화였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편한 시선도 한몫 했다. 그러나 사회인식 변화와 함께 퀴어 콘텐츠를 향한 과감하고 새로운 도전이 이어졌다. 미국과 태국, 일본 등에서는 일찌감치 퀴어 콘텐츠가 발달했고, 이에 대한 수요도 꾸준했던 터. 뒤늦게 퀴어 콘텐츠 시장에 뛰어든 한국은 OTT 시장의 진화와 맞물려 빠른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일부 드라마들에서 성소수자 커플들의 이야기가 다뤄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지상파 드라마는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심위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이 우선시 된다. 반면 OTT는 소재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하다. 특히 퀴어 콘텐츠는 스포츠 분야 등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이용자층 유입에 효과적이다. 시청자들이 능동적으로 시청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반발도 적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OTT가 퀴어 콘텐츠에서 주목받을 수 있을 만한 측면이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 창작 기준 중 하나가 마이너하지만 강력한 팬덤이나 소구층이 있을 경우 제작한다. 그것이 반응이 좋으면 글로벌 OTT로 수출된다"라며 "모바일 시대가 퀴어콘텐츠의 성장에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여기에 제작자들의 '영리한' 접근법도 영토 확장에 성공했다. BL드라마들은 정체성을 유지하되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법한 섬세한 연출로 시청자들을 파고들었다. 웨이브의 경우 두 편의 퀴어 예능을 동시에 공개하며 충격파를 완화 시키고, 더 나아가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시멘틱 에러' [사진=왓챠]](https://image.inews24.com/v1/3eaf81c84558fb.jpg)
캐스팅도 퀴어콘텐츠 열풍에 한몫 하고 있다. '시멘틱에러'의 주인공인 박서함은 아이돌 그룹 크나큰 출신이며, 박재찬은 DKZ 멤버다. 이들이 드라마의 인기로 인해 차세대 배우로 주목받으면서 BL드라마 캐스팅 부담이 이전보다 완화됐다. '비의도적 연애담'은 MBC 일일드라마 '두번째 남편' 주인공이자 '나 혼자 산다'로 얼굴이 잘 알려진 차서원과 그룹 B1A4 공찬 등 인지도 있는 배우들로 라인업을 꾸렸다. '신입사원' 역시 MBC 일일극 '밥이 되어라' 주인공이었던 권혁이 출연하며, '오 나의 어시님'은 FT아일랜드 출신 송승현이 출연한다. '메리퀴어' 남남커플인 민준, 보성은 구독자가 170만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이미 팬덤을 확보한 이들의 출연으로 화제성을 높이는 동시에, 시청자 유입을 기대할 수 있는 것.
다만 퀴어콘텐츠들은 여전히 넘어야 할 벽이 많다. '동성애를 미화하고 조장한다' 는 날선 시선도 있다.
김 문화평론가는 "어떤 주제의식을 갖고 접근하느냐가 다를 것 같다. 퀴어가 사랑의 보편적인 행태로 다뤄지면 곤란할 것 같다. 너무 일반화 할 경우 다른 드라마 시청자층이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가 있다. 온라인에서 회자되는 건 그만큼 제한성이 있는 것이다. 무리하게 보편화 하면 거부감이 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장애가 있는 주인공을 내세우지만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매력적인 캐릭터 때문"이라며 "퀴어콘텐츠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실상을 알린다거나 너무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통해 인식의 저변을 넓히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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