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떠나도 멀리 가도 눈물 흘리지 말아요. 하늘 보고 나를 보고 이 노래를 불러요."
이제 길은정의 팬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그를 추억해야만 한다.
1984년 '소중한 사람'으로 가수 데뷔한 이후 MC, DJ, 수필가 등 다방면으로 활약한 그는 경기 성남시 자택에서 43세의 나이로 결국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그가 힘든 암투병 끝에 숨을 거두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마지막까지 음악과 삶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가열찬 영혼이었기 때문이다.
1996년 직장암 판정을 받으면서 투병을 시작한 그의 병세는 지난해부터 급격히 악화됐다. 하지만 암세포가 골반과 척추까지 전이돼 오른쪽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음악에 대한 의지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선물, '만파식적'

그는 최근 '세상의 만가지 파란을 잠재운다'는 의미의 마지막 음반 '만파식적'을 발매했다.
가슴 아픈 가사를 담고 있는 '이 노래를 불러요'와 최희준의 '종점' 리메이크곡이 담겨 있는 이 음반은 점점 가까워지는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그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최후의 선물이 되어 버렸다.
그는 '만파식적'을 통해 자기 내면의 온갖 번민은 물론 다른 이들의 상처와 영혼까지 어루만지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줬다.
또한 그는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 밖에 살 날이 남지 않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후에도 매일 2시간씩 원음 방송에서 '노래 하나 추억 둘'을 진행하는 라디오 DJ로 자리를 지켰다.
하루하루 계속되는 통증 속에서도 가만히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기 보다는 세상과의 꾸준한 만남을 택한 것이다. 그는 죽기 전 날인 6일에도 끝까지 마이크 앞을 지키며 청취자들과 음악속에서 함께 호흡했다.
진통제 맞으며 무대에 서다
지난해 11월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되어버린 KBS '열린 음악회'에서는 노래를 부르다 쓰러져 녹화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그의 강한 의지에 따라 진통제를 먹고 다시 무대에 오르는 투혼으로 주위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휠체어에 앉아 기타를 치며 울면서 노래하는 그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지만 정작 본인은 "더 좋은 무대를 보여줄 수도 있었는데..."라는 말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한편 그는 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마지막으로 남긴 일기에서 "국내의 한 기타제조회사에서 내 이름이 새겨진 파란색 기타를 만들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좋아서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뱅글뱅글 돌기도 했다"는 사연을 들려줬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음악에 대한 열정은 죽음을 향해가는 커다란 고통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노래 하나 추억 둘'의 송년특집 방송에서 그 기타를 연주하며 '호텔 캘리포니아'를 불렀다는 그의 '자랑'은 비통에 잠긴 그의 팬들에게 잠시나마 잔잔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만드는 대목이다.
비록 그가 파란색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모습은 더이상 볼 수 없지만 그런 그의 마음만은 그를 아끼던 팬들의 가슴 속에 변함없이 남아있을 것이 분명하다.
길지 않은 인생에 비해 수많은 결과물을 세상에 남기고 떠난 그가 하늘로 향하는 길에는 그가 일기에 남긴 마지막 문장처럼 '파랑색처럼 순수하고 맑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 함께 하기를 팬들은 진심으로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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