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동아리방에서 '러브레터'를 감상한다. 추억을 끄집어내는 90년대 풍경에, '첫사랑 그녀'가 있었다. 배우 전소니가 풋풋하고 아련한 로맨스 연기로, 자신의 '화양연화'를 만들어냈다.
최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에서 과거 윤지수를 연기한 배우 전소니를 만났다. "지수가 아직 남같이 느껴지지 않는다"라며 전소니는, 드라마의 깊은 여운을 전했다.
'화양연화'는 아름다운 첫사랑이 지나고 모든 것이 뒤바뀐 채 다시 만난 두 사람 재현과 지수. 가장 빛나는 시절의 자신을 마주한 이들의 마지막 러브레터를 그린 작품. 유지태와 이보영이 현재의 한재현과 윤지수를 각각 연기했고, 박진영과 전소니가 젊은 시절을 동시에 맡아 절절한 첫사랑 연기를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전소니는 "'화양연화'는 글로 지수를 만났을 때부터 좋아했다. 폐를 안 끼치고 잘 마무리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과거의 인물들을 많이 기억해주고 애정을 표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의지하면서 왔다. 마지막회까지 무사히 와서 다행이고,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겪어보지 못한 90년대 이야기였다. 낯선 시대에 대한 두려움보다, "그 시절에 대한 환상이 컸다"며 행복함을 느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삐삐와 공중전화, 카세트 테이프 등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소품들이 가득했던 그 현장에 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웠다고.
전소니는 "삐삐는 처음 봤다. 공중전화는 익숙한데 거의 사용을 못 해봤다. 특히 빨간 공중전화 부스는 이전에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소품 구경하는 것도 신기했다. 그 오래된 버스나 자동차가 굴러가는 것도 신기했다. 제 기억에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창살의 창문들이 많던 동아리 방도 너무 예뻤다. 연기하면서 남의 현장처럼 신기해했다"고 웃었다.
운동권 학생을 연기했던 재현(박진영 분)과 달리, 전소니는 시대적 분위기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지수 그 자체를 연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전소니는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지수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시기인지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제 대학에 입학을 했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섞여들기 시작하면서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새로이 보이고 설렐 것 같았다. 이 시기에 보고 듣는 것들이 크게 와닿았을 수 있다. 그 때의 지수였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았고, 남은 인생을 살려고 하지 않았나. 90년대도 중요했지만 이제 스무살 지수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연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보여지는' 것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전소니는 "저도 욕심이 있었다. 감독님,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상의해가며 의상 피팅을 세 번 정도했다. 예전 드라마들을 참고해서 여러가지 콘셉트로 입어보기도 했다. 지수가 가족들을 잃고 혼자 남겨지기 전까지, 예쁘게 꾸밀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시대적 배경이었던 93년, 94년의 작품들을 살펴봤다는 그는 "고소영, 심은하, 김희선 선배님, 그리고 어릴 적 전지현 선배님을 참고했다"고 덧붙였다.
그가 연기한 지수는 밝고 당찬 성격에, 사랑 앞에서도 솔직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전소니는 "실제로 그렇지 못해서 지수를 좋아했다. 당차고 직진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는 걸 알면서 현실에서는 그렇게 용기를 내는 일을 만들지 않았다. 인생에서 한 번쯤 내 마음을 솔직하게 꺼내보고 싶다. 지수가 멋있었다"고 말했다.
전소니에게 '화양연화'는 첫 주연작이자 본격 멜로 연기를 한 첫 작품이다.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박보검을 향한 짝사랑을 연기했던 전소니는 '화양연화'에서 쌍방 로맨스를 꽃피웠다.
전소니는 "첫 멜로를 굉장히 두려워했다. 상대 배우가 마음을 열어줬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제가 아마 서툴렀을 것이다. 멜로도 처음이고 드라마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것도 처음이다. (박진영이) 배려를 할 줄 아는 분이라 도움을 받으면서 했다. 짝사랑보다 덜 외롭고 의지할 사람이 있어 같이 만들어가는 부분이 있다"고 멜로 연기를 한 소감을 전했다.
전소니는 드라마를 마친 지금도 박진영을 '재현 선배'라고 불렀다. "진영이가 진영이인 것이 아직 잘…"이라며 말끝을 흐리며 웃던 전소니는 박진영에 대한 칭찬을 늘어놨다. 그는 "배려를 할 줄 알고 제가 헤매거나 불안해할 때 도움을 줬다. 배우로서 욕심이 많다. 제가 지수를 좋아하는 만큼 진영 씨도 재현이를 좋아하고 애정을 주고, 그런 열정과 열의가 넘쳤다"라고 박진영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선배 연기자 이보영과 2인 1역을 하는 새로운 경험도 했다. 세월이 흐른 뒤 현재의 지수가 상처와 고단한 현실 속 단단해진 모습이었다면, 과거 90년대의 지수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당찼다. 과거와 현재의 지수는 달랐지만, 이보영과 전소니는 두 인물을 괴리감 없이 자연스럽게 연기해냈다.
2인 1역에 크게 부담감을 갖지 않았다는 그는 "얼마나 공통된 인물인지 보여주는 것보다 과거의 지수가 지수다운 삶을 살다가 이렇게 많이 변했다. 과거의 지수를 잘 만들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이야기 해줬다. 통일감이나 일치감을 보여주기보다, 설득력 있고 개연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될거라고 생각했다"고 똑부러지게 답했다.
과거의 재현과 지수, 현재의 재현과 지수는 다른 시대를 살았던 탓에 이보영과 유지태를 마주칠 기회는 크게 많지 않았다. 그는 "장소가 같으면 조금 일찍 가거나, 촬영이 끝나도 집에 가질 않았다. 귀찮게 말을 걸고 했다"고 웃으며 "(이보영) 선배와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감독님, 선배들과 있다가 이보영 선배님이 없으면 그 빈자리가 티나는 느낌이다. 이보영 선배가 있으면 분위기가 밝다"고 말했다.
전소니는 "유지태, 이보영 선배님이 많이 예뻐해주고 손을 먼저 내밀어주는 타입이더라. 유지태 선배님은 현장에서 저희만 보면 '아름답다' '예쁘다'고 해줬다. 마지막 방송을 보면서 (이)보영 선배님과는 서로 안아줬다. '지수 너무 수고했다'고 하셨다. 이번 드라마 하면서 외롭지 않았다. 같이 하는 시간들이 행복했다"고 환하게 웃었다.
전소니에게 '화양연화'는 제목 그대로 배우 인생의 '화양연화'를 만들어줬다. "지수가 너무 좋다"는 전소니는 캐릭터도, 함께 한 배우들도 오래토록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앞으로의 연기 인생에 대한 기대도 드러냈다. 2014년 단편영화 '사진'을 통해 배우로 데뷔한 그는 영화 '죄많은 소녀'로 주목 받았고 지난해 영화 '악질경찰'과 '밤의 문이 열린다' 드라마 '남자친구'에 출연하며 부지런히 연기 행보를 이어왔다.
전소니는 "배우를 하면서 첫 주인공이라는 것에 많은 신경을 안 썼다. 지수를 예쁜 시선으로 봐준 것 같아 용기낼 수 있었다. 아직 내가 연기하는 모습이 아쉽다. 하지만 아쉬운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그 다음에 더 할 수 있다. 벌써 마음에 차면 그 다음이 재미없을 것 같다. 부끄러워도 더 들여다보고 한 작품씩 거듭할 때마다 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악질경찰'을 만나기 전까지, 연기를 계속 하는 것이 맞을까라는 의심을 했다"는 그는 연기하는 즐거움을 배웠고, 또 연기자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
현재의 전소니가, 미래의 전소니에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도 띄웠다. 그는 "지금의 제게 미안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 때의 제가 후회할 순간들을 최소한으로 만들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지만,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좋을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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