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동현 기자] KBL이 차기 시즌부터 도입하는 외국인제도는 사람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장단신 제도가 부활한 것은 둘째치고 장신 선수에 신장 제한을 두는 새로운 제도가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KBL은 지난달 5일 이사회를 통해 외국인선수 제도에 대한 세부사항을 조율하고 확정했다. 지난 2004~2005시즌 도입해 2006~2007시즌까지 3년간 시행했던 신장 제한이 다시 부활한 것이 주요 골자였다.
당시의 제도부터 먼저 살펴보면 두 선수의 총합이 400㎝를 넘어서는 안되고 한 선수의 신장이 208㎝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한 선수의 키가 208㎝라면 다른 한 선수의 키는 192㎝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최근 3년간 KBL이 시행해 재미를 봤던 장단신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되 각각에 걸려있던 제한을 낮추기로 했다. 단신선수는 193㎝에서 186㎝로, 장신선수는 무제한에서 200㎝로 제한선이 설정됐다.
제도가 발표된 이후 현장 실무자들 그리고 팬들의 반발이 거셌다. 200㎝를 약간 넘는 선수들의 신장 재측정이 줄을 이뤘다. 올 시즌 KBL에서 뛰면서 평균 25.7점을 넣어 리그 득점왕에 등극한 데이비드 사이먼(전 안양 KGC)는 205㎝로, 이 신장 제도대로라면 뛸 수 없다. KBL센터에서 KBL 운영팀 직원들의 엄격한(한 사람은 무릎을 잡고, 한 사람은 머리를 잡는) 입회 아래 신장을 재측정했지만 고작 2㎝를 줄이는 데 그쳤다. 결국 리그 득점왕은 쓸쓸하게 한국을 떠나게 됐다.
사이먼 뿐만 아니라 전주 KCC에서 뛰었던 찰스 로드(200.1㎝)와 부상을 당한 애런 헤인즈를 대신해 서울 SK의 우승청부사로 한국을 다시 찾은 제임스 메이스(200.6㎝) 또한 신장 재측정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5일 열린 정관장 KBL 챔피언결정전 미디어데이에선 문경은 SK 감독이 "메이스는 밤에 재면 무조건 통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애초에 낮에 재건 밤에 재건, 누군가의 신장을 제한하고 재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개그요소다. 이러한 사실에 은근한 일침을 가하는 듯한 발언에 이 자리에 있던 취재진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신장 제한을 두는 나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농구가 국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필리핀이다. 하지만 필리핀은 모든 대회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3차대회에서 196.5㎝의 제한을 둘 뿐이다. 한국으로 치면 5라운드와 6라운드에 신장 제한을 두는 격이다.
그렇다면 왜 KBL은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됐을까. 김영기 KBL 총재의 강력한 요구가 가장 큰 부분인 것이 사실이다. 김 총재는 예전부터 단신선수의 신장 제한을 186㎝로 해야한다는 논리를 펴왔다. 지난 3일 '조이뉴스24'와 통화에서도 이같은 논지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장단신 제도를 이용해 많은 기술적인 선수들이 들어왔다. 이러한 선수들 덕분에 농구의 재미가 올라간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선수들의 기량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김 총재의 논리다.
물론 김 총재만의 생각은 아니다. 이러한 모든 KBL의 안건은 각 구단의 이사회를 통해 결정된다. 당연히 이번 신장제한 또한 마찬가지다. 김 총재는 "물론 반대하는 구단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구단이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퇴임하는 김 총재이기 때문에 사실 구단들이 반대하고자 했다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안건이 통과된 것은 모두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구단들의 책임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미 엎질러진물이지만 한 가지 만큼은 확실히 짚어야 한다. 지금까지 뛰었던 선수들을 볼 수 없을 가능성을 너무나도 간과했다는 것이다.
일찍히 한국 스포츠계는 외국인선수를 '용병', 즉 돈을 주고 도움을 받는 존재 정도로 여겼다. 실제로 국내선수들과 다른 선에 이들을 놓았고 매시즌 종료 후 물갈이가 되는 장면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장수 외국인선수들이 나오면서 점점 이러한 풍토가 바뀌었다.
재계약 불가가 확정된 사이먼이나 로드 같은 선수들은 적어도 함께 뛴 선수들에게나 그들의 경기를 봐온 팬들에겐 '가족'같은 존재들이다. 사이먼은 지난 2010년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이후 5시즌을 한국 무대에서만 뛰었다. 아직 신장 재측정에 임하진 않았지만 200㎝ 이상이 나올 경우 한국을 떠나야하는 로드 또한 2010시즌부터 7시즌 동안 KBL에 헌신했다. 사이먼의 조용하지만 강한 플레이와 로드의 뜨거운 열정적인 플레이에 매료된 팬들도 적잖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을 볼 수 없다.
긴 시간을 뛰었느냐, 짧은 시간을 뛰었느냐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팬들에게 있어선 '우리 팀에서 뛰었던 선수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더 클 것이다. 팀에서 뛴 선수를 국적과 무관하게 받아들이는 풍토는 더이상 낯선 것이 아니다.
야구와 축구만 봐도 그렇다. 두산 베어스에서 오랜시간을 뛴 더스틴 니퍼트는 팬들이 신문 광고를 낼 정도로 애정이 남다른 선수이고 프로축구 수원 삼성에서 뛰는 데얀에게 보내는 한국 팬들의 충성심은 어느 한국인들과 비교해도 높다. '외국인'이 아닌 내 팀에서 뛰는 한 명의 선수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외국인'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보는 사람들보다 많다는 방증이다.
외국인선수에 대해 보수적인 일본조차도 이러한 제한을 두고 있진 않다. 일본 프로농구 B리그의 외국인 보유수는 3명, 경기 출장 가능은 2명으로 제한할 뿐 신장 제한을 두고 있진 않다. 농구보다 더욱 보수적인 일본 프로야구(NPB)의 경우도 외국인선수가 7년간 뛸 경우 FA 자격을 주는 동시에 일본인과 같은 선수로 취급을 한다. 오랜 시간을 타지에서 뛴 보상이라면 보상이다.
김 총재는 이러한 지적에 "이사회 사람들도 그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미 이 룰은 결정된 사항이기 때문에 당장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 시즌을 시행해보고 다음 시즌엔 다시 검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장 제한 변화에 대한 여지를 남긴 것이다. 물론 이 또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아울러 김 총재가 퇴임한 이후의 일이다. 또 다시 한번 기나긴 이사회 그리고 실무진의 논의를 거쳐야 한다.
그렇기에 더욱 이 제도를 결정하기 전에 한번만 더 검토를 해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두 시즌이 그러했듯 단신선수의 도입이 득점을 향상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내 선수'가 떠나가는 상실감을 맛본 팬들의 발걸음까지 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혹여 룰이 다시 바뀐다고 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에 한국을 떠나게 된 선수들 또한 복귀할진 알 수 없다.
결국 농구의 재미는 득점이라는 단순한 요소로만은 결정되지 않는다. 코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드라마가 신장과 득점만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농구의 재미는 아마 지금보다 훨씬 반감됐을 것이다. 결국 이번 김 총재와 이사회의 결정은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사실이 간과됐다는 것이 가장 크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을 가벼이 여긴 대가가 어떻게 돌아올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Playlist : Lil' Bow Wow - Basketball]농구 팬이라면 아마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원곡은 커티스 블로우가 부른 같은 제목의 노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포츠는 농구'로 시작해 앨리웁이나 픽앤롤 같은 농구팬이라면 귀에 익은 농구 용어도 들려온다. 무엇보다 눈여겨봐야할 것은 이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모두 농구를 즐겁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키에 상관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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