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바비 롭슨에 따르면, 보비 찰튼에 따르면, 프란츠 베켄바워에 따르면'…해외 축구 관련 외신 보도를 인용하다 보면 소위 전설(레전드)로 불리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축구계 현안이 나오면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밝힙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국내 반응도 대부분 비슷합니다. '전설의 말이 옳다'는 식이죠. 이런 기사를 소비하는 지인 중 한 명이 기자에게 질문을 던지더군요. "한국 축구에는 레전드가 없냐. 축구가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정리해주는 어른이 보이지 않아"라는 겁니다.
그래서 11월 1일 창간 13주년을 맞이한 국내 최초의 스포츠·연예 인터넷 신문 조이뉴스24는 한국 축구의 전설들에게 지혜를 구했습니다. 축구 문화, 환경, 분위기 모두 과거와는 단절하고 현재와 미래만을 향해 가고 있어서 노련한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총 3명의 레전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국 축구는 무엇이 문제인가요. 희망은 있을까요?" 3회에 걸쳐 독자들과 만납니다.
마지막 레전드는 1956년 홍콩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현 아시안컵) 우승 멤버안 박경호(87) 선생입니다. 박 선생은 현역 은퇴 후 건국대, 육군사관학교, 서울대에서 후진을 양성했고 1990년에는 일본 프로축구 J리그 오이타 트리니타에서 기술 고문으로 구단 발전에 기여한 인물입니다.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을 게 있소. 다른 사람들과 대동소이 할 텐데."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보조 목발을 짚고 기자를 맞이한 박 선생은 "한국 축구에는 미래가 없소"라며 탄식부터 쏟아냈다. 물론 '반어법'이었다. 국가대표는 부진하고 관리하는 대한축구협회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으며 K리그는 늘 위기에 봉착해 있고 풀뿌리 축구는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것에 대한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지난 1일 박 선생을 경기도 양주시 덕정동 자택에서 만났다. "뭐하러 여기까지 늙은이를 보러 왔느냐"면서도 스스로를 '노마지지(老馬之智-늙은 말의 지혜라는 뜻)'라 낮추며 한국 축구를 걱정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일본은 경쟁에서 밀려도 협력해서 발전시키는데…
박 선생은 1930년 해주에서 태어나 1946년 월남해 경신중학교에서 축구에 입문한 뒤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동생 박경화(78) 선생과는 최초로 형제 국가대표로 이름을 날렸다. 은퇴 후 대한축구협회 이사,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 이사를 역임했다. 한국방송(KBS)에서 축구 해설위원을 했고 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 저서도 다양했다. 어린이 축구 지도서부터 한국 축구사(史), 일본 축구와 관련한 책도 다수 발간했다.
박 선생의 존재는 1990년대 이후 대중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가 지난 2015년 아시안컵 결승에 올라가면서 관심을 받았다. 당시 유일하게 1회 아시안컵 생존자라는 이유에서다. 다소 젊은 축구팬들은 "한국에 저런 전설이 있었는가"라며 놀랄 정도였다.
현재는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노환으로 지난해를 끝으로 저술 활동을 정리했다. 외부 활동이 어려워 자택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본의 지인이 찾아와도 서울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모든 손님이 박 선생을 만나려면 양주까지 와야 한다.
한 가지, 축구를 담당하는 기자로서 부끄러웠던 것은 일본 매체들은 박 선생을 꾸준히 찾아 한국과 일본 축구를 비교하는 취재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28일에도 일본의 축구 잡지 '축구 비평'의 필진이 박 선생을 만나러 왔다고 한다. 오는 4일에도 한 인사가 약속을 잡고 온다고 한다. 주로 해외축구와 국가대표 소식에만 집중하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고려하면 씁쓸함과 숙연함이 밀려왔다. 레전드를 누가 더 예우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자문에 답을 못하면서.
"내가 이제 움직이기 힘들어요. 손에도 힘이 없어. 입만 남았지. 그래서 이렇게 떠들고 있는지 몰라. 내가 지은 죄가 커서 이제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어. 아! 참. 요 축구비평 잡지 말이요. 일본축구협회를 비평합디다. 그러니까 협회가 잘 돌아가게 비판이든 호평이든 모두 담고 있다는 말이요. 우리 환경에서 대한축구협회를 비평하는 축구인이 있습니까. (이런 잡지를 통해) 축구협회 비평하면 싫어하잖소. 좋은 말만 듣고 싶어 할 텐데 말이지. 그래서 일본이 참 대단하다는 거요."
오이타 기술 고문을 역임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과 한국 축구를 비교하게 됐다는 박 선생이다. 일본의 체계적인 모습과 선진 축구를 받아들여서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보면서 같은 과정을 거치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한국과 너무나 비교됐단다.
"일본은 유치원부터 프로까지 모든 것이 체계적이고 일률적이다. 준비 운동부터 똑같이 한다. 초, 중학교까지는 체육 선생이 아니면 지도자를 할 수 없다. 고등학교부터는 전문 축구 지도사가 와서 기술을 지도한다. 전문 축구 선수가 아니라 체육을 하기 위한 육성이다. 이런 인력들이 생활 속에 퍼져 있으니 축구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프로도 마찬가지다. J리그 구단들도 K리그 기업구단처럼 모기업이 있지만 구단 경영은 별개다. 구단이 기부금을 내줄 뿐이다. 그러니 기업이 후원해도 시민의 구단이 되는 것 아닌가."
◆"축구인들아 정신 차려라!" 한국의 답답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박 선생은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가. 기업구단이 기업을 위해 돈을 지출하지 시민이 어디 있는가. 예전에도 말했지만, 기업의 홍보 예산을 받아 홍보 역할 하는 것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달라지겠지만 아직 멀었다.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외국인 감독을 데려와서 대체 무엇을 얻었나. 일본은 좋은 것만 뽑아서 자기들의 축구 틀에 녹이기라도 했지만, 한국은 전혀 얻지 못했다. 그냥 그 외국인이 자기 것만 하고 가버렸어. 뭘 남겨 놓았는지 확인해봐라. 있는가. 흉내만 냈지." 어디서부터가 문제일까. 박 선생은 축구계 종사자들, 특히 경기인 출신으로 행정, 지도자 역할을 하는 인물들에게 제대로 하라고 소리쳤다. "한국 축구 환경이 세계와 견줘 나쁜가. 아니다. 정말 좋다. 그런데 축구협회가 예산이 많으면 뭐하나. 그 돈이 다 어디로 갔는가. 자기들 배로 들어갔지. 축구 말고 다른 것을 하는 게 없으니 다 돈에 눈이 멀었다. 그래서 최근에 그 일(조중연 전 회장 집행부의 공금 횡령 사건)이 일어난 것 아닌가. 반성해도 부족하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한국 축구는 끝난다. 제대로 운영해야지." 걱정을 쏟아내는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기자를 책장이 있는 방으로 안내한 박 선생은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스크랩북 3권을 꺼냈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그가 기고한 칼럼을 모은 것이다. 정말 놀랍게도 칼럼 내용에는 '프로축구 인기 회복을 위한 노력 필요하다', '축구협회의 축구행정 한심', '심판도 공부해야 한다' 등을 주제로 한 칼럼이 있었다. 한국축구가 과거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기록물이었다. 소위 과거 한국 축구를 주름잡았던 제자들이 서로 협력해서 위기 극복의 힘을 모았으면 하는 것이 박 선생의 마음이다. "축구인은 너와 나를 가리지 말고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일본의 예를 계속 드는데 지난해 다시마 고조 회장이 당선되고 난 뒤 경쟁자였던 하라 히로미 후보가 전무를 맡아 협력했다(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J리그 부의장으로 자리를 옮김). 축구로 한평생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정신이 협력이라는 자세를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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