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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감독이 현실로 끄집어낸 과거의 '허스토리'(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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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감정보다 반전에 방점 찍었다"

[조이뉴스24 유지희 기자] 경험해보지 않은 일을 그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거대한 역사적 구조에 삶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린 개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표현한다는 것은 더 큰 노력이 요구된다. '허스토리'는 위안부와 정신대 피해자의 시선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하지만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묵직하게 전한다. 민규동 감독의 지난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허스토리'(감독 민규동, 제작 수필름)는 역사상 단 한번, 일본 재판부를 발칵 뒤흔든 관부재판 실화를 담은 영화. 관부재판은 지난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23회에 걸쳐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정부를 상대로 벌인 끈질긴 법정 투쟁이다. 영화는 10명의 할머니 원고단과 그들의 승소를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재판과 삶을 조명한다.

'허스토리'는 그간 여러 작품에 등장한 위안부 이야기를 다루지만 소재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아픔과 슬픔만을 자극하지 않는다. 민규동 감독은 '적정선'을 지키며 감정의 맥락을 전한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넘치지도, 모자르지도 않는 그 적당한 선을 부여잡으려 매 장면마다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허스토리'는 먹먹함을 넘어 '무엇이 진짜 승리인지' '연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등 과거를 뛰어넘는 동시대성의 메시지를 전한다.

작품은 창작자의 연장이기에 영화에는 감독이 극중 소재, 더 넓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허스토리'는 민규동 감독이 역사와 그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영화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등에서 '약자'의 시선을 잃지 않았던 민규동 감독이 '허스토리'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채운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허스토리' 개봉 후 민규동 감독을 만났다.

이하 민규동 감독 일문일답

-앞서, '허스토리'를 만든 계기를 "혼자 잘 먹고 잘 살 수 없어서"라고 밝히며 개인적인 부채의식을 전했다. 영화를 완성하고 난 후, 소회가 남달랐을 텐데.

"큰 숙제를 하나 덜어냈다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여러 과제들 중 일부분이다. 역사 이야기를 다룰 때 '그 순간을 영화로 만든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작은 답을 얻었다고 해야 할까. 몰랐던 사실을 아는 것만이라도 삶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진다. 더 나아가 과거 어떤 인상적인 순간이 작품에서 해석될 때 관객에게 돌이킬 수 없는, 다른 인생의 결을 만들어준다. 그만큼 어떤 시선으로 그 지점을 표현하느냐가 중요하기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지금과 다른 시대를 다룰 때 '어떤 자세, 시선을 취해야 하는지' 스스로에 대한 질문의 답을 하나 써내려간 것 같다."

-영화는 우리나라 관객에게 생소한 '관부재판' 내용이다.

"'관부재판'이라는 소재뿐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위안부와 근로정신대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영화에는 이들을 포함해 위안소 주인, 거짓말을 하면서 자신을 보호해야만 했던 할머니도 등장한다. 기존에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박물관 구석에 있는 이야기를 다시 꺼내왔다.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왜 이 이야기를 또 만드는지'다. 과거를 다룰 때는 당시와 지금의 접점, 동시대성이 있어야 그 작품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허스토리'의 동시대성은 무엇이었나.

"일본이 얼마나 나쁜지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다. 극중 원고단장 문정숙(김희애 분)처럼 남의 일이라고 여기거나 피해자에게 손가락질한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성장하는 것은 실제 우리의 시선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은 관심이 얼마나 큰 지지를 만드는지' '진정한 연대가 무엇인지', '시혜적 입장이 아니라 할머니들의 마음 속 깊이 들어가 친구가 되는 것' '함께 있고 다같이 단단해지며 행복해 하는 것'이 진짜 승리라는 걸 영화를 통해 느끼게 하고 싶었다."

-역사 소재이기에 자료를 찾고 이들 중 무엇을 영화적 재료로 선별할지 고민과 고생이 많았겠다.

"200여 명의 할머니들이 용기 있게 증언하셨고 이를 묶은 5권의 증언집이 있다. 또 매 집회마다 만들어진 소식지가 있고 극중 문정숙의 실존인물 김문숙 한국정신대문제대책 부산협의회 회장님이 이를 번역해 관부재판 기록집을 만드셨다. 여기에 구두변론 연습, 사진 등의 자료가 있어서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또 문정숙의 캐릭터는 김문숙 회장님이 쓰신 에세이로 만들어갔다. 영화는 법정 드라마이지만 동시에 캐릭터들의 성장 서사가 있다. 실제 기록들에 담긴 증언, 작은 에피소드들을 영화로 옮겨왔을 때 그 맥락이 잘 전달되길 바랐다."

-'허스토리'는 눈물을 과하게 자극하지 않는다. 어떤 의도였나.

"너무 교훈적이거나 계몽적이면 관객이 튕겨나간다고 생각했다. 영웅적인 이야기는 너무 남의 일 같고 자꾸 미안한 마음을 들춰내게 한다면 그것 또한 관객에게 힘들다. 부채의식을 자극하고 정서적으로만 호소하는 것은 감정과잉으로 본질을 흐리게 한다. 즉 관객에게 (그 감정이) 무엇에 끌려가는지 모르게 한다. 공분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선동이 된다. 반일 감정을 넘어 반전에 방점을 찍고 할머니들 목소리의 핵심, '우리가 겪은 고통이 반복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했다. 또한 실화 바탕에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라서 너무 가짜로 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여겼다. 역사적 실제성이 담보된 한계 내에서 만들려 노력했다."

-극의 중심에는 여성 연대가 있다. 남성 감독으로서 캐릭터들을 이해하는 데 한계도 있었을 텐데.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게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 이어 두번째다. 감독으로서 외계인, 외국인, 노인 등 직접 경험하지 않는 삶과 사상을 표현해야 하는 미션을 맞닥뜨리고 이럴 때마다 '나는 인물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내게 최고의 연대는 가지고 있는 권력을 나눠주는 시혜가 아니라 '그 입장에 대한 동의'다. 그리고 여기에서 '동의'는 '같이 걸어가는 것'이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그랬다. 이를 통해 태생적인 젠더의 한계는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허스토리'는 위안부·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바라보는 시점으로 풀리는 작품이기에 그 입장을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 여겼다. 문정숙의 경우엔 기존 작품들에서 그린 남성 캐릭터들을 미러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돈 많아'라고 하는 자존심과 배짱, 그리고 브로치 등을 통해 그 여성만이 표현할 수 있는 지점이 잘 표현되길 바랐다."

-극중, 추상적인 '국가'와 성별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장면들이 등장하더라.

"영화가 취해야 하는 스탠스는 추상화된 일본이라는 '국가'에 부딪히는 것이 아니었다. 인권 감수성에 따라 개개인이 나뉘어지기도 해서 일본 또한 그 안에 양심 있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도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뭉칠 수 없는 거대한 벽들이 있지 않나. 이 지점에서 정의로운 삶을 살아온, 일본 국적의 이상일(김준한 분) 변호사가 중요한 존재였다. 또한 그가 '진짜 승리가 무엇이느냐'라는 아이러닉한 문제제기를 하는데, 이를 통해 시혜적 입장이던 문정숙이 단계적인 각성을 거친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도) 유효 가능한 문제제기다.

-역사 소재를 다룬 영화 '간신'의 연출도 맡지 않았나. 이런 역사관이 '간신'과 연관성이 있나.

"'간신'은 제국주의에 대한 공통의 비판이었다. 베트남 전쟁처럼 우리나라가 자행한 역사적 사실이 의도적으로 삭제된 것에 질문하고 싶었던 마음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이 영화 속 연대는 다른 한편으론 인종, 계급, 국가를 넘는데 그 지점에서 '허스토리'와 일맥상통한다. 할머니들이 용기있는 고백을 했었던 1990년대 초반, 그분들을 더 힘들게 한 건 일본보다 우리 사회였다. 지금은 할머니들에게 큰 응원을 보내지만 당시엔 수치스러운 삶을 살도록 강요하고 불필요하게 과거를 흔드는 것에 지지보다 비난의 목소리가 많았다. 정부 또한 다른 국가에 지원하는 것보다 자국 피해에 더 인색했다. 당연히 진화될 거라 생각하지만 시대정신의 진화과정이 느리고 아쉽다. 그런 부채의식이 계속 쌓이고 그간 위안부나 근로정신대 소재를 가지고 다루지 않은 부분, 가려운 면을 솔직히 표현하고 싶었다."

-피해자의 신체에 남겨진 상처는 과거를 소환한다. 이는 관객에게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게 만들지만 감독으로서는 신체의 어디까지를 표현할지 고민이 컸겠다.

"그렇다, 고민이 너무 많았다. 나 또한 어렸을 때 봤던 상처 이미지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각인돼 있다. 그만큼 무서운 도구이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의미 형성이 달라진다. 이런 도구를 쓰는 우리는 강렬한 유혹에 시달리기도 해서 감독으로서 큰 숙제다. 흉터를 어떤 이미지로 재현할지, 약 3~4달 고민하고 배우들과도 의견을 나눴다. 미술팀 모두가 여성이었는데 이들과도 어떤 표현이 가장 좋은 시선의 선을 지키는지 계속 이야기 나눴다."

"신체에 지나치게 방점을 두지 않으려 노력했다. 충격효과로 사용하거나 잔상을 남기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체의 상처를 그런 도구로 이용하는 방식은 울분을 선동하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이를 경계했다. 이 영화에선 신체의 흉터 자체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평생 목욕탕을 가지 못하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피해 할머니들 삶의 맥락을 전하는 게 중요했다. 또한 법정에서 흉터를 드러내는 게 '어떤' 용기인지를 표현하려 했다. 극 초반에 흉터는 피해자로서 정체성을 표현하지만, 나중엔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것들이 내가 신체의 은유를 통해 보여주려는 흉터의 개념이었다."

-특히 배우 김희애의 연기 변신이 눈길을 끌더라. 우아한 이미지의 김희애가 걸크러시 캐릭터로 변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어디에서 발견했나.

"김희애 씨는 드라마에서 안정적인 연기와 이미지를 구축했지만 영화적으로는 고정된 게 없더라. 문정숙이라는 캐릭터를 놓고 처음엔 할리우드 배우 줄리안 무어 같은 모습을 생각했다. 생각보다 우리나라에서 50대 여배우는 많지 않고 다행히 김희애 씨가 연기 변화에 대한 욕망이 너무 컸다. 그런 배우들은 그만큼 멋진 변신을 할 수 있다. 이 배우가 지닌 잠재성을 확인하고 싶어, 문정숙이 부딪치는 모든 캐릭터들의 배우들과 리딩을 시켜보기도 했다. 김희애 씨가 힘들어 하면서도 오기가 붙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려가더라. 그 모습이 멋있었다. 모든 배우들이 그렇지만 김희애 씨도 강렬한 고통 속에서 연기하는 인물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배우들이 그런 힘듦을 겪을 때 감독으로서 나는 즐겁다.(웃음) 관객들이 김희애의 연기 변신을 보는 쾌감이 클 것 같다."

-김희애뿐 아니라 실존했던 할머니들의 연기를 담아낸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의 연기도 인상 깊었다. 이들의 각각 어떤 모습을 캐릭터와 매칭시켰나.

"배우들이 다른 사람들과 섞이지 않는 자기만의 특성을 지닌 동시에 그룹샷으로 찍었을 때 한팀의 느낌도 있어야 했다. 김해숙 선배님은 연기적으로 늘 완벽했던 분이다. 그런데 처음 만났을 때 겁에 질려 '내가 감히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너무 겸손한 질문을 하시더라. 그때 '이 영화가 진심을 전달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약 50년 동안 고통을 숨기고 살았던 모습은 누구도 표현할 수 없는 이해 불가능한 삶이라 생각하면서 캐릭터에 몰입하셨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니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셨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드렸더니 아껴서 울으시더라. '마음으로 연기하는 게 이런 거구나'라고 오랜만에 체험한 순간이었다. 털털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예수정 선배님이 법정에서 욕설을 하는 강한 모습이 관객에게 쾌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개봉한 '신과 함께-죄와 벌'에서는 대사가 없었는데 상대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더라. 문숙 선배님과는 예전부터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40년 전쯤의 클래식하고 세련된 느낌으로 여전히 연기를 많이 하셔서 극중 유일하게 소학교를 다녔던 인물과 잘 맞아 떨어졌다. 이용녀 선배님의 경우엔 대사가 많지 않지만 기존에 날카로운 이미지를 순수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게 감독으로서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편 '허스토리'는 지난 6월27일 개봉, 극장가에서 상영 중이다.

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hee0011@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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