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독법과 '시계태엽 오렌지'
2013.12.03 오후 2:46
알렉스는 ‘악의 화신’ 같은 인물이다. 성폭행과 폭력을 예사로 일삼는 인물이다. 길 거리에서 눈에 띈 주정뱅이를 마구 때리는가 하면, 한 은둔 작가의 집에 무단 침입해 부인을 성폭행한다. 그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를 때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를 부르면서 춤을 춘다. 한 마디로 죄의식이란 전혀 없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날 알렉스는 살인혐의로 체포된다. 14년 형을 선고받은 그는 정부의 범죄 퇴치 프로그램인 ‘루드비코요법’에 지원한다. 이 치료 때문에 알렉스는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태어난다. 폭력적인 장면을 보거나, 충동을 느낄 때마다 구토와 함께 심한 고통을 느낀다. 폭력적인 성향 자체가 인위적으로 제거되어 버린 것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에 나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영화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건 ‘폭력적 인간’ 알렉스가 아니다. 루드비코 요법 치료를 받고 난 뒤 무기력한 시계 태엽처럼 거세된 알렉스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과연 알렉스가 폭력적인가? 아니면 그에게서 자율적 판단을 거세해버린 국가가 더 폭력적인가?

케케묵은 영화 얘기를 꺼낸 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게임중독법 때문이다. 이 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게임 중독의 폐해가 크니, 그걸 법으로 막자는 것이다. 이 법 도입을 주도하는 사람들 중엔 ‘부모의 심정’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만큼 확신에 차 있다는 얘기다.

게임중독법을 둘러싼 논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게임이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하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논란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체로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많은 것 같다. 게임을 많이 하면 폭력성이 커진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인 연구 결과다.

두번째로는 “설사 중독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법으로 규제하는 게 과연 타당하냐”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게임중독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두 가지 질문 모두에 대해 “예”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 같다.

냉정하게 한번 따져보자. 백보 양보해서 게임에 중독성이 있다고 한들, 그걸 법으로 못하게 막는 게 과연 타당한 것일까? 그렇게 따지면, 우리 사회에서 법으로 규제해야 될 게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이런 논리를 좀 더 밀고 나가게 되면, 늦잠 자는 것까지 규제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다시 ‘시계 태엽 오렌지’ 얘기로 돌아가보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개인의 폭력보다, 그런 개인을 시계태엽 장치처럼 생각 없는 존재로 만든 국가의 폭력이 더 무섭다는 얘길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처한 상황에 따라 충분히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 영화가 묘사하는 폭력의 피해자들을 직접 목격했다면, 혹은 그런 피해자들을 치유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알렉스에게 더 잔혹한 응징을 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난 게임중독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진정성까지 의심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걸 법으로 규제까지 하겠다는 건 정말로 신중해야 한다. 인간의 자율적 의지에 한번 손을 대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이다. ‘폭력적 인간’ 알렉스보다 더 무서운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게임중독법’ 공방을 보면서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떠올리게 된 이유다.

김익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