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과학 산업 경제
정치 사회 문화·생활
전국 글로벌 연예·스포츠
오피니언 포토·영상 기획&시리즈
스페셜&이벤트 포럼 리포트 아이뉴스TV

게임 중독법과 '시계태엽 오렌지'

본문 글자 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알렉스는 ‘악의 화신’ 같은 인물이다. 성폭행과 폭력을 예사로 일삼는 인물이다. 길 거리에서 눈에 띈 주정뱅이를 마구 때리는가 하면, 한 은둔 작가의 집에 무단 침입해 부인을 성폭행한다. 그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를 때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를 부르면서 춤을 춘다. 한 마디로 죄의식이란 전혀 없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날 알렉스는 살인혐의로 체포된다. 14년 형을 선고받은 그는 정부의 범죄 퇴치 프로그램인 ‘루드비코요법’에 지원한다. 이 치료 때문에 알렉스는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태어난다. 폭력적인 장면을 보거나, 충동을 느낄 때마다 구토와 함께 심한 고통을 느낀다. 폭력적인 성향 자체가 인위적으로 제거되어 버린 것이다.

케케묵은 영화 얘기를 꺼낸 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게임중독법 때문이다. 이 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게임 중독의 폐해가 크니, 그걸 법으로 막자는 것이다. 이 법 도입을 주도하는 사람들 중엔 ‘부모의 심정’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만큼 확신에 차 있다는 얘기다.

게임중독법을 둘러싼 논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게임이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하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논란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체로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많은 것 같다. 게임을 많이 하면 폭력성이 커진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인 연구 결과다.

두번째로는 “설사 중독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법으로 규제하는 게 과연 타당하냐”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게임중독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두 가지 질문 모두에 대해 “예”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다시 ‘시계 태엽 오렌지’ 얘기로 돌아가보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개인의 폭력보다, 그런 개인을 시계태엽 장치처럼 생각 없는 존재로 만든 국가의 폭력이 더 무섭다는 얘길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처한 상황에 따라 충분히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 영화가 묘사하는 폭력의 피해자들을 직접 목격했다면, 혹은 그런 피해자들을 치유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알렉스에게 더 잔혹한 응징을 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난 게임중독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진정성까지 의심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걸 법으로 규제까지 하겠다는 건 정말로 신중해야 한다. 인간의 자율적 의지에 한번 손을 대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이다. ‘폭력적 인간’ 알렉스보다 더 무서운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게임중독법’ 공방을 보면서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떠올리게 된 이유다.

김익현 편집장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 해주세요.

alert

댓글 쓰기 제목 게임 중독법과 '시계태엽 오렌지'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