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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선희의 Classic DVD]충무로영화제를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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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만나는 고전의 향수

한 동안 영화제엘 가지 않았다. 사람에 치이는 게 피곤하고, 보고픈 영화는 일찍 매진되고, 하루 서너 편 씩 보는 건 영화에 대한 예의도 아니며, 그렇게 몰아보면 오래 기억되지도 않고, 시간도 없었고, 비용도 많이 들고, 등등의 이유 때문에.

제2회 충무로국제영화제는 집에서 걸어가면 되는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데다, 이치가와 곤의 영화를 집중적으로 보고 싶어 매일 찾아갔다. 대중적인 영화라 해도, 꼼꼼하게 기록하고 챙기는 일본인의 장점이 잘 나타나 있고, 50-70년대 정서에 흠뻑 빠질 수 있어 새삼 일본이 이웃이라는 데 고마움을 느꼈다.

오즈 야스지로 영화의 히로인, 하라 세스꼬를 유일 여신으로 흠모해오다, 기시 게이코와 기시다 교코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는 등, 일본 영화 전성기 스타의 개성과 미모와 연기력에 빠져 행복한 시간을 보낸 건 제2회 충무로국제영화제 개근 덕분이었다.

이토록 빼어난 스토리, 연출, 연기력 전통을 젊은 일본 영화인이 이어받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게스트 룸에서 커피를 받아들고, 3개 극장을 오가며 자유롭게 영화를 보다, 스시로 배를 채우면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하루 4편의 영화를 보며 흥분했던 옛날이 떠오르기도 했다.

중장년층이 참여할 수 있는 충무로영화제

제2회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놀란 건 중장년 어르신 관객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치가와 곤을 비롯한 일본 영화 고전에서부터 독일 영화의 고전 <노스페라투><푸른 천사><엠> 등과 데이비드 린의 <밀회><위대한 유산><닥터 지바고><아라비아의 로렌스>, 막스 오필스의 <롤라 몬테스> 등 중장년층 관객을 유인할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70대라는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푸른 천사>를 보았는데, 할머니는 한달 문화비로 30만원쯤 쓴다고 하셨다. 영화를 가장 많이 보지만 뮤지컬과 미술 관람도 종종 간다고 하셨다.

이 나라에 이처럼 행복한 할머니가 몇 분이나 되실까 싶기는 했지만, <라벤더의 연인>과 같은 잔잔한 드라마를 찾아다니는 중장년 여성 관객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불법 영상을 다운받아 보는 젊은이보다 추억과 감동의 영화를 찾아다니는 중장년 여성 관객 개발로 돌파구를 찾아야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동창회 사이트에 좋은 영화 평을 올리고, 조조할인 표를 예약해 단체 관람하는 아줌마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들은 극장에서 보지 못한 영화는 친구 집에 모여 DVD로 보며 평을 나누고, 자가용을 몰고 여름휴가 겸 동창회를 제천국제영화제 참가로 대신하는 등, 문화 향유에 정신적 경제적 여유를 과시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옛날을 추억하고 오늘을 즐기는 데 적극적인 중상류층 아줌마를 적지 아니 알고 있는 덕분에, 나는 이들로부터 "어떤 영화를 볼까요?"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제2회 충무로국제영화제의 경우 데보라 카 주연 영화를 권했다. 2007년 86세로 세상을 떠난 기품 넘치는 영국 여배우 데보라 카. 제2회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선 4편의 고전을 상영했다.

<검은 수선화><지상에서 영원으로><어페어 투 리멤버><왕과 나>. 53편의 영화를 남긴 데보라 카의 필모그라피를 생각하면 '데보라 카를 기억하며'라는 거창한 섹션 제목이 부끄러울 지경이고, 네 작품 모두 dvd 출시작이라 아쉽기도 하지만, 대형 스크린으로 데보라 카의 우아한 모습을 다시 보는 건 중장년 세대에겐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충무로영화제의 경쟁력

이제 겨우 2살 된 영화제지만, 충무로국제영화제는 두 가지 점에서 경쟁력 우위를 갖추었다. 서울에서 열리며, 고전을 많이 상영한다는 것. 올해로 13회를 맞이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역사, 규모, 유명세에서 1위를 달리는 영화제이긴 하지만, 이제는 영화 보러 부산까지 가고 싶지 않다고 꾀가 난다.

사람에 치이는 게 피곤하고, 보고픈 영화는 일찍 매진되고, 시간 내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서울 사는 영화 팬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사나흘 가 있으려면 50만원은 각오해야 한다.

이러니 젊은 영화학도는 물론이고, 추억의 영화에 빠지고 싶은 어르신도 열차 표 끊기가 망설여질 수밖에. 더구나 서울에서도 1년 내내 크고 작은 영화제가 열리는 데 굳이 그 먼데까지 가서 인파에 시달리며, 매진된 표를 구하려고 줄을 서고 싶겠는가. 제2회 충무로국제영화제의 중장년 관객을 보며, 부산영화제에서 이 연령 대 관객을 보기 힘들었던 건, 역시 거리와 비용 때문이라는 추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충무로영화제의 아쉬운 점

제2회 충무로국제영화제에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니다. 싸구려 인공 향을 뿌려대어 머리와 눈을 쑤시게 하는 중앙극장의 환기 시설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이치가와 곤 영화 대부분이 중앙극장에서 상영되는 바람에, 나는 좌석 넓고 쾌적한 명동 씨너스에서 이치가와 곤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중앙극장 매니저를 지네 극장에 하루 동안 가두어 두고 싶다, 중앙극장에 가려면 방독면을 준비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두 번 한 게 아니다.

상영 시작 후 들어와 제 자릴 찾거나, 부시럭거리며 음식을 먹는 것도 모자라, 손전화 받고, 게임을 하고, 소곤거리는 학생 단체 관람객을 보노라면, 이 나라에 국제영화제가 이토록 많지만 100회를 넘더라도 국제 수준 기대는 무리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구 단위로 국제영화제를 열만큼 국제영화제 천국인 코리아. 일주일짜리 영화제에 지출되는 억 단위 비용을 모두 합하면 도시마다 시네마테크를 넉넉하게 운영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이제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에 대한 분노로 커져버렸다.

조이뉴스24 /옥선희 칼럼니스트 eastok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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